끄라따이토끼는 파인애플의 두꺼운 껍질을 썰며 애써 하품을 참았다.
그녀는 새벽 4시부터 깨어 있었는데, 며칠간 가판대에서 판매할 과일을 사러 도매시장에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다.
회색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섰을 때, 그녀는그 서양인들이 또 왔다고 생각했다. 뒷좌석에 앉아있는 그들의 사랑스러운 세 살배기 아들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저들의 발음은 좀 이상해. 대체 나에게 왜 말을 거는 거지? 아무런 접점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한테 말이야! 그래도 웃으며 대답해야지. 내 미소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환하게 미소짓는 끄라따이의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다.’오늘도 날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걸까? 나는 지금 막 남자친구에게 차였고,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은 불량한 친구들과 몰려다디고 있는데 말이야. 거기다 엄마까지 자꾸만 돈이 없는 나에게 같이 절에 가서 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하고 있고! 대체 날씨 따위가 무슨 상관이람.’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책읽는 거 좋아하세요?” 키가 큰 금발의 여성이 끄라따이에게 물었다. “아, 네. 사실은, 좋아해요.” 조금 놀란 듯한 끄라따이가 대답하자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뭔가를 보여주었다. 광택이 나는 표지로 덮인 작은 책이었다. “당신은 이 책에 흥미를 느낄 거예요. 크리스마스에 대한 책이거든요.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거 알고 계시죠?”책을 건네받은 끄라따이는 형식적인 미소를 띠며 말했다. “글쎄요. 이 책을 읽을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매일 밤 저는너무 지쳐 있거든요.” 그러나 그날 밤, 끄라따이는 화려한 책표지를 넘기며 생각했다. ‘그녀는 왜 나에게 이 책을 준 걸까?’
며칠 후 그 여성이 끄라따이를 다시 찾아왔다. “그동안 책 읽을 시간이 있었어요?” 그녀의 질문에 끄라따이는 답했다. “저는그동안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인지 몰랐어요. 그저 서양의 설날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녀는 끄라따이를 교회로 초대했다. 하지만 끄라따이는 곧바로 그 초대에 응할수 없었다. 일요일은 마을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날이어서, 과일 장사가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끄라따이는 거부할 수 없는 뭔가에 이끌렸다. 강한 호기심도 꿈틀거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로 설명하거나 입증할 수는 없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건, 끄라따이가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진정한 행복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끄라따이는 매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수익은 줄어들지 않았고, 그 사실에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리더가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했다. 바로 ‘부활절’이었다. 그날 끄라따이는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철저히 깨달았다.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이전에는 그저 그냥 웃는 미소로 가득했던 그녀의 얼굴에 새로운 미소가 찾아왔다. 그것은 찬란하게 빛이 나는 진실한 웃음이었다.
선교지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하는 신임 선교사들이 성령 충만한 가운데 태국어와 태국 문화를 배워가도록 기도하자. 태국어를 유창하고 정확하게 구사하기 위해서 최소 3년이 걸리고,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문학 작품은 태국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가장 강력한 매체이다. 예수님을 영접한 태국인의 66%가 문학 작품이 그들의 결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태국인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태국어로 된 기독교 문학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게, 더 많은 태국 작가들이 복음과 구주 되신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이렇게 쓰인 기독교 문학 작품들이 두루 읽힐 수 있기를 기도하자.
많은 태국인들은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산다. 날씨가 나쁘거나 몸이 아프고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일하러 갈 수없는 그들은 매우 취약한 상황에 처해있다. 삶이 고단한 그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만, 그리스도에 대해 배우기위한 시간을 내기 위해 일을 쉬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그렇게 살아갈 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도록. 일용직으로 일하는 기독교인들이그들의 일터에서 담대하게 신앙을 나눌수 있도록 기도하자.